[가정예배 365-8월 16일] 지옥의 구렁텅이는 누가 팠는가

[가정예배 365-8월 16일] 지옥의 구렁텅이는 누가 팠는가

입력 : 2021-08-16 03:03

 

 


찬송 : ‘세월이 흘러가는데’ 485장(통 53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6장 22~26절


말씀 :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죽은 후에 음부에 떨어집니다. 음부(하데스)는 쉽게 말하면 그냥 지옥입니다. 지옥의 불꽃 속에서 몸부림치던 부자는 멀리 아브라함을 보고 애절하게 간청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여기 아브라함이 ‘가고 싶어도’라는 말을 하지요. 아브라함이 부자한테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 가서 도와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그렇게 가서 도와주고 싶은데도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서 갈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구렁텅이는 헬라어로 ‘카스마’라고 하는데 그냥 구렁텅이가 아니고 큰 구렁텅이입니다. 이것은 하품할 때 입을 쫙 벌리는 모양새를 뜻합니다. 하품하면 입이 가장 크게 벌어지죠. 어떤 사람은 하품을 너무 크게 하다가 턱이 빠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카스마가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를 딱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카스마 때문에 아브라함이 부자한테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겨납니다. 대체 이런 구렁텅이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이 구렁텅이는 대체 누가 파놓은 것일까요. 사탄, 마귀가 졸개들을 시켜서 파놓은 것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구렁텅이를 파놓은 장본인은 다름 아닌 부자 자신입니다. 부자가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파 놓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대문가에 누워 있는데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굶어 죽었어요. 부자가 나사로를 보고 손톱만큼이라도 불쌍한 마음을 가졌더라면 카스마가 조금 메워졌을 것입니다.

나사로를 어떻게 도와줄까, 이런 생각을 품었더라면 카스마가 조금 좁혀졌을 것입니다. 나사로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주었더라면 카스마는 훨씬 좁아져서 건너뛸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나사로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을 봐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카스마는 나날이 벌어져서 결국 부자가 건너갈 수도 없고 아브라함도 건너갈 수 없는, 엄청난 구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카스마는 부자가 살아생전에 만든 것입니다. 지옥이 무엇입니까. 사람들과 마음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지옥이든 천국이든 간에 다 이 땅에서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구렁텅이, 카스마를 묵상하는데 갑자기 ‘가슴 아프게’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묘하게도 ‘카스마’하고 ‘가슴 아프게’하고 발음이 비슷합니다. 살아생전 가슴 아픈 사람들을 보고도 가슴 아파하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서 자기 자신도 가슴 아픈 일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카스마의 교훈입니다.

기도 : 하나님, 저희에게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