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10일] 참 예배(3) 기도로 나아가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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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365장(통 48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 : 한국교회는 성도의 눈물과 기도로 서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기도의 어머니들 걸음이, 평생 보이지 않던 눈물을 쏟으시던 아버지의 기도가 이 나라, 이 믿음을 세웠습니다. 가난한 시절 기댈 것이 없던 백성에게 주어진 기독 신앙은 한국인 특유의 종교심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새벽기도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곧 금요철야, 금식기도, 산마다 들어선 기도원으로 이어졌고, 이내 40일 새벽기도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이제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 많던 기도원과 기도회는 힘을 잃었고, 세상 속 성공과 성취를 향한 바쁜 일상에 기도의 자리는 밀려났습니다.

예배가 그러하듯 기도 역시 누구에게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기도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간절히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알고 믿는지가 우리의 기도를 결정 짓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종교적 대상으로 오해합니다. 그렇게 되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큰 바위나 오래된 나무처럼 절대자 하나님에게 비는 나의 소원으로 기도가 탈바꿈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종교적 표현들을 뛰어넘는 본질적 호칭이 그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그 생각이 우리의 기도를 바꿉니다. 아버지께 나아가기 위해 굿을 하거나 영을 달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 아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기도는 강력한 존재를 어르고 달래 내가 얻고 싶어하는 것을 따내는 공양이나 주술이 아닙니다. 아빠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며 그분과 이야기하는 교제입니다. 그렇지 않은 기도는 가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잘 보이는 곳에서 큰 목소리로 길게 기도하던 서기관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얼마나 역겨워하시는지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막 12:38~40).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처음 갇힌 상황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반대와 생명의 위협 끝에 로마에 다다랐지만, 가택 연금돼 마음대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답답함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을 오히려 위로했습니다(6절).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자녀만이 올려드릴 수 있는 담대한 기도입니다. 이제 이런 기도를 우리가 올려드립시다. 이 기도를 모든 세대가 알게 물려줍시다. 우리 가운데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넉넉하신 사랑과 은혜를 예배하며 온 세상이 알게 합시다.

기도 :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이미 아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아버지 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믿음으로 담대하게 기도로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대진 목사(수원 하늘누리교회)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