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29일] 예수님의 비유 (4) 악한 종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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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샘물과 같은 보혈은’ 258장(통 190)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8장 23~25절

말씀 : 미움은 사랑만큼이나 보편적이고 흔한 감정입니다. 누구나 사랑하지만, 그만큼 누구나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도 예외는 아니었나 봅니다. 베드로가 어느 날 묻습니다.

“예수님, 내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할까요? 일곱 번쯤이면 될까요?”

베드로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몇 번을 용서해도 전혀 변화가 없는 인간말종들이 있는데 그래도 용서해야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일곱은 완전수이니 그만하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악한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한 종이 있었는데 그는 임금에게 1만 달란트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빚졌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그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나가서 자신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의 멱살을 잡고 갚으라고 난리를 친 후 그를 옥에 가둬 버립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들이 측은지심과 분노가 함께 일어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악한 종을 붙잡아와 호통을 칩니다.(32, 33절)

사실 이 비유의 핵심은 ‘남을 어떻게 용서할까’가 아닙니다. ‘내가 용서받은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종이 진 빚의 액수 1만 달란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입니다. 한 달란트가 6000일 동안 일해야 받을 수 있는 품삯인 것을 안다면, 1만 달란트는 일용직 노동자가 자그마치 15만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다시 말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라는 뜻입니다. 정확한 금액을 계산하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이것을 갚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이 종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진 죄의 짐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었는지를 잊지 마라. 그 엄청난 죄의 빚을 모두 탕감받은 것이 바로 하늘나라 백성이다. 그런데도 형제의 조그만 잘못과 죄악을 배겨내지 못하더냐? 내가 아주 민망하고 불편하구나.”

그렇게 외치시는 것입니다. 이 종이 왕에게 진 빚의 규모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환할 수 없는 악성 채무였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왕은 그 빚을 자신이 끌어안고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종의 마땅한 반응은 자신의 빚을 탕감해 주신 왕의 은혜와 자비를 기억해 다른 사람들을 그와 같이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왕의 기대였습니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기대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엡 4:32)고 말했습니다. 받은 만큼 갚아주는 복수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해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삶을 보여줍시다. 이를 통해 하늘 왕이 보여주신 은혜와 용서를 전하는 제자로 삽시다.

기도 : 우리의 크나큰 죄를 모두 용서하신 하나님, 그 엄청난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옵소서. 우리도 주의 은혜와 용서를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 용서하게 하옵소서. 예수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대진 목사(수원 하늘누리교회)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