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8월 19일] 한 사람을 위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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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구원으로 인도하는’ 521장(통253)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이사야 61장 1절

말씀 : 한 사람을 살리는 것에서 교회는 시작됐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 한 사람에 속합니다. 한 사람을 살리고 살아가고 계속해서 그가 그 길을 가도록 함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기독교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요. 구원입니다. 조금 해학적으로 표현한 데는 그만큼 구원의 가치가 평가절하돼 있어서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라는 구원의 의미를 오해하게 되면 생각보다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은 구원받았기에 이 땅에서의 삶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습니다. 나 외의 다른 사람의 생명 따위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왜곡된 신념이 자리 잡습니다. 이는 이단적 사상이 됩니다.

구원은 건져내어 주는 것입니다. 생명을 건져내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건져내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라는 것이 전부였다면 굳이 사람으로 오시지 않으셔도 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직접, 몸소, 우리의 삶에 찾아오십니다. 당신의 영혼들이 죽어가는 현장으로 찾아가십니다. 어떤 계층도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병들어있는 자들에게, 마음이 상한 자들에게, 어린아이들에게, 노인들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찾아가 주십니다. 그들을 그 삶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구원에 대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병들어 있는 모든 사람이 병이 다 낫지 않았다는 겁니다. 눌려있는 자들이 그 눌려있는 문제가 갑자기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이 예수를 만난 뒤에 모두 다 부자가 되고 돈을 벌지 않습니다. 구원이 마치 우리 삶에 문제가 해결되고 잘되고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것이 구원의 증거가 도무지 아니라는 겁니다.

구원은 삶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태도를 바꿔주는 전인적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여전히 세상과 동일한 삶의 문제를 겪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기도문 서두에 언급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하늘이 우리가 보는 물리적 하늘이 아니듯 말입니다. 이 하늘은 다른 차원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은 다른 차원의 하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속해있지만 구원받은 자녀들은 다른 차원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존재는 구원받은 존재이지만, 삶은 구원의 영역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계속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결심해도 다시 반복되는 실패의 자리가 무엇입니까. 진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아서 아예 지금은 포기해버린 것들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곳은 구원의 대상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한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비록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이 좁은 길이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을 따라 살아갑니다. 거기에 바로 한 사람을 위한 교회가 세워집니다.

기도 : 주님, 구원받은 자녀들이 성령을 따라 삶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혁 변두리교회 목사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