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8월 21일] 은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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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197장(통17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8장 1~2절

말씀 : 은혜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쓰는 표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이 사용하다 보니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은혜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것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하나님이 다를 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그 어려움이 해결되면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아픔과 눈물의 과정은 재앙처럼 여깁니다. 심지어 죄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감춰야 할 부끄러움처럼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웬만하면 없는 게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의 과정도 은혜라고 보십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고후 8:1) 은혜는 상당히 역동적인 표현입니다. 은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운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그만큼 삶을 바꾸고 그 바뀐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입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 은혜를 받으면 재정을 바라보는 관점도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재정이 없어 궁핍함에 있어도 오히려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더 진심을 다합니다. 자기도 부족해서 극심한 재정적 궁핍이 있음에 헌금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진대 그러지 않습니다. 더 넘치도록 예물을 드립니다. 역설적입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드리는 예물은 계산해서 드리는 헌금이 아닙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창고가 가득 채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연보하는 것 자체가 은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은혜는 상당히 우리 삶에 구체적인 행동 양식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영적 카타르시스라기보다는 실제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강한 운동력을 표현한 것이 은혜입니다.

힘이 있어서 돕는 게 아닙니다. 여력이 되어서 돕는 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힘이 생기게 되면 오히려 돕지 않을 것을 알기에 돕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변질되고 잊어버리게 될 것을 알기에 돕는 것입니다.

찬양 ‘은혜’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입니다. 지나온 우리의 아픔과 눈물의 과정들도 모두 다 은혜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 : 주님, 고난의 과정조차도 모든 것이 은혜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혁 목사(변두리교회)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