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8월 30일] 나는 고립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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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183장(통 17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2장 7절

말씀 : 요즘 하루가 멀다고 불특정 개인을 향한 ‘묻지마 범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충격은 상당합니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해를 준 가해자들에게는 공통점들이 발견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고립입니다.

고립은 사람이나 어떤 대상이 다른 것으로부터 따로 떨어지게 된 것을 뜻합니다. 이런 상태에 있게 되면 보이는 모습이 있습니다.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습니다. 고립되면 숨어버립니다. 그리고 고립이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사회적 피해를 주는 원인이 됩니다.

고립의 정의 가운데 자연 속에서 고립된 경우를 ‘조난’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고립은 사회적 조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는 이 조난 상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구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병들어 있는 한 존재를 사회적 조난 상황에서 구해내고 회복시키는 열쇠가 공동체에 있습니다. 공동체는 규모를 따르지 않습니다. 크다고 해서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작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 한 영혼을 고립시키지 않고 조난 가운데 있는 그를 살려낼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어느 정도의 규모가 돼야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는 한 사람, 한 존재인 나 자신입니다. 내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나 한 사람이 공동체라니 말입니다.

나의 몸은 하나이지만 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체들은 여럿입니다. 나의 마음, 생각이 나입니다. 그리고 나는 나를 표현해주는 지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공동체가 됩니다.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고립과 조난 상태에 있는 영혼을 살려내는 힘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힘은 바로 생기입니다. 생기는 히브리어 표현으로 ‘루아흐’, 즉 성령입니다. 동물들도 생명이 있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동물에게 생기를 불어넣지는 않으셨습니다. 사람에게만 주신 생기는 특별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생명 있는 존재를 넘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건강한 공동체라는 것은 생기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이 전인적으로 건강합니다. 그런 사람은 삶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게 될 때도 조난의 상태, 고립의 상태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럴 때 생기를 잃지 않습니다. 내 안에 주의 영으로, 생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고립은 사라집니다.

기도 : 주님, 성령의 생기가 충만하여 고립되지 않고 늘 주님과 동행하는 건강한 공동체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혁 목사(변두리교회)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