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기독교인들은 “감사와 승리 강박증”에 시달리기 쉽다.
물론 감사와 찬양의 힘은 위대하다. 우리는 고통 가운데 감사하고 찬양으로 역경을 이겨내 수 있고 이겨내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 믿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를 경험한 이들의 간증을 들으며 힘을 얻는다.
나 역시 그렇게 이겼다고 승리를 외치고 싶고, 그렇지 못하면 신앙이 없는 것이 되니까,
교회에 오래 다닌 이들에겐 남들의 시선도 문제가 된다.
특히 모범이 되야하는 직분자나 목회자 , 그리고 사모들은 위선에 빠져 연기자가 되어야 하는 압박까지 받는다.
고난에 뜻이 있다고 믿는 것이 현재 상황을 견디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고통이 밀려올 때 이를 악물고 감사를 외쳐도 인간의 감정은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믿음과 감정 사이에 골이 깊어지고 갈등이 일어난다.
“나는 끝까지 원망하지 않고 견디어야 해! 나는 이 상황에서 감사를 택할 거야!”란
이상적인 모습과 아무리 기도하고 인내하며 기다려도 응답이 없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 현실 가운데,
내적 갈등이 생기고 이 갈등은 우울감으로 변한다. 감사와 만족을 선택하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종일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을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해도,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감사와 만족은 그 누구도 강요할 수도 없고,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 느끼는 우울한 감정을 어찌하기란 어렵다.
물론 버티다 보면 다 지나가는 날이 오고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였어요. 고난이 복이었어요!”라는 고백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나 나올 수 있는 고백이지, 그 과정 속에서는 제한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거나 희망사항이다.
그 만큼 이 고백을 늘 느끼고 살기엔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힘들 때,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은 단숨에 해결책을 제공하지는 않아도 크게 도움이 된다.
신앙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계속 밀려오는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오랜 기간 우울한 이에게 옆에서 “힘내! 기도와 말씀으로 이겨내!”라는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엔 너무 지쳐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마치 다리 인대가 늘어나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이에게 정신을 차리고 힘내서 벌떡 일어나 뛰자고 하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강철이 아닌 연약한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래서 내 생각대로 상대를 도와주려 들지 말고, 상대의 필요와 요구사항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냥 따뜻하게 함께해주는 것, 조언해 주기보다는 아픈 마음을 경청해 주며 힘든 마음을 알아주기,
소소할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고통당하는 이들이 다시 일어나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하고, 울고 싶으면 실컷 울게 기회를 허락하라.
상대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이해할 수 없음을 공감해 주고 같이 울어라.
시편기자가 하나님을 원망한 내용이 성경이 된 것처럼,
원망과 슬픔을 기도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상한 감정에 대한 치유의 기회다.
고통당하는 이에게 감사와 긍정의 간증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때론 감사와 승리 강박증이 자신을 더 괴롭힐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적용을 잘못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이해할 수없음에 솔직해지고 자신과도 공감하라.
그리고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어라. 힐링은 자신과의 공감에서 온다. 당신의 연약함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변화의 능력을 얻을 수가 없다.
약함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임할 기회가 다가온다.
-이민규 교수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