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박욱주 칼럼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좀비 콘텐츠 계속, 기독교 문화에 주는 함의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한국형 좀비 학원물, <지금 우리 학교는>.

 

◈한국형 좀비 서사: 일본식 좀비 서사의 세계화

 

넷플릭스의 기대작 <지금 우리 학교는>의 첫 번째 시즌이 지난 28일 공개되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호평 측은 드라마 초반의 빠른 호흡과 긴박감, 그리고 좀비 묘사의 적나라함을 강점으로 꼽는다.

 

반면 출연자들의 연기 역량 부족과 드라마 중후반부 유사한 서사 패턴의 반복, 좀비 서사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하는

진부함 등을 이유로 박한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종합해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미 공식화된 좀비 서사의 틀을 벗어나는 참신성은 보여주지 못하지만,

한국의 학교 생활과 사회 부조리 등에 관한 요소들을 첨가하고

좀비 창궐 장면의 생동감 및 박진감 등을 강점으로 내세워 흥행을 노리는 드라마로 평가된다.

 

원래 학원물과 좀비 장르가 결합된 작품이라면 통상 일본의 B급 좀비 영화들을 떠올린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좀비 영화들이 거의 매년 제작되고, 그 가운데 상당수 작품에서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스테이시>(2001), <좀비 애스>(2011), <학교생활!>(2019)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영화의 퀄리티는 대부분 B급을 넘어 거의 정크 무비 수준에 가깝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일본 좀비 영화들 속에 보이는 설정 및 서사의 저급함은 배제하고,

고등학생들의 활약과 좀비 창궐 장면의 생동감이라는 매력적인 요소들만 추려내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거의 대다수의 일본 좀비 영화들이 비위가 상할 정도로 극단적인 고어(gore) 연출 요소를 채택하는 데 반해,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를 통한 해외 배급에 적합한 수준으로 그 수위를 조정한 듯하다.

사실 일본식 서사를 수용하고 세련되게 가다듬어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던

<오징어 게임>의 전략을 비슷하게 따라가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 창궐 장면들은 여러 모로 일본의 수위 높은 표현방식,

대표적으로 <아이 엠 어 히어로>(2015)나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2017) 등의 좀비 표현 방식을 참고한 결과물로 보인다.

특히 좀비 창궐 초기 현주(정이서 분)의 허리가 접혀 몸이 분리되는 장면이나 보건 교사(안시호)가 좀비가 되어

벽에 충돌하는 장면의 경우 일본 좀비 영화에서 유사한 장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일본 좀비 영화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 <아이 엠 어 히어로>의 한 장면.

 

좀비 영화가 주는 긴장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좀비 창궐 지역을 탈출해 생존하려는 이들의 몸부림에 감정이입할 때 나오는 처절한 긴장감이고,

다른 하나는 좀비에 감염된 이들의 비참한 처지에 감정이입할 때 나오는 절망감 섞인 긴장감이다.

 

서양의 좀비 영화들이 주로 전자를 부각시키는 데 비해, 일본의 좀비 영화는 후자,

즉 몸이 썩어들어가고 정신이 붕괴된 좀비들의 처지에 대한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이렇게 관객들 혹은 시청자들이 스스로를 영화 속 좀비의 처지에 감정이입할 때,

저런 괴물로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이는 좀비들의 처지를 유독 강조하는 좀비 영화나 드라마가 애초 의도한 것이다.

관객들이 처참한 처지에 처한 이들의 유일한 탈출구로 완전한 소멸에 이르는

죽음을 우선 떠올리도록 생각의 방향을 유도하는 것이다.

 

◈유물론적 좀비 서사: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 약화를 보여주는 좀비 장르의 인기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런 점에서 일본 식 좀비 영화의 방향을 따라간다.

생존한 이들의 사정보다는 이리저리 감염되어 괴물로 변해가는 이들의 사정이

훨씬 안타깝게 보이도록 신파적 요소를 이리저리 섞어 놓았다.

 

불량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여학생 은지(오혜수 분)의 상황이 대표적이다.

학교와 사회의 부조리에 고통당하다가 결국 좀비 사태에서도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사례들이 작품의 감정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듯 오로지 죽음만이 구원이자 해결책인 상황을 강제하는 서사의 배후에는

인간의 사후에 대한 희망을 전적으로 차단하는 유물론적 인간 이해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존재가 소멸해야 할 상황에서 소멸하지 않는 경우,

남는 것은 오로지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괴물 뿐이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완전한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신념이

좀비의 처지를 부각시키는 영화나 드라마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학교는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좀비의 처지를 강조하면서 작품의 긴장감과 감정선을 강화한다.

 

현상적으로만 본다면 죽음 너머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존재의 진정한 마지막은 죽음으로 인식된다.

이런 신념은 사후 존재나 사후 세계를 인지할 수 없는 인간의 인식적 한계로 인해 정당화된다.

현대 유물론과 실존철학은 죽음이 인간 존재의 진정한 종말이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고수한다.

 

좀비 영화나 드라마가 유독 1990년대를 기점으로 커다란 팬덤을 형성하고

대중문화계의 한 주요 장르로 떠오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혼과 내세의 존재에 관한 믿음에 중심을 둔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죽음을 인류의 최종적 운명이자 안식처로 여기는 죽음 이해가 대중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즉 좀비 장르의 인기는 기독교적 인간 이해가 지닌 영향력의 약화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좀비 장르가 대대적인 인기를 얻기 전에도 부활과 영생을 왜곡하고 희화화하는

대중문화 소재로서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뱀파이어는 고전적 전설에 기반을 둔 크리쳐(괴생물)인 만큼,

왜곡된 영생을 누릴지라도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매력적으로 묘사되는 요소가 있었다.

피를 마실 수만 있다면 아픔과 고통이 없이 살 수 있고,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며,

인간이었을 당시의 기억과 지적 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성에게 강력한 매혹 작용을 걸 수 있는 등의 매력 요소가 존재했다.

 

하지만 좀비의 처지는 아무런 매력 요소가 없다.

인간으로서 삶이 끝난 뒤 끝없는 고통, 허기, 악의에 찬 상태로 몸이 썩어들어가며 타인을 감염시킨다.

인간 때의 기억도 사라지고, 지적 판단도 전혀 할 수 없이 완벽하게 저주받은 상태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좀비 장르가 뱀파이어 장르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흥행하는 최근의 세태는 그만큼 죽음 이후

내세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격렬하게 거부하는 인간이해가 일반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최근 세계 대중문화계 크리쳐물 방면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는 좀비 장르의 강세에 올라탄 작품이다.

 

뱀파이어 장르는 2014년 이전까지 드라마 <트루 블러드> 시리즈(2008-2014)와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2008-2012)로 대중문화계에서 좀비 장르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의 대중문화계에서 크리처물 방면에서는

<워킹 데드> 시리즈(2010-2022)로 대표되는 좀비 장르가 압도적인 대세를 이룬다.

 

한국도 <부산행>(2016), <킹덤>(2019-2021), <반도>(2020) 등 좀비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이런 흐름에 속해 있다.

현재로서 <지금 우리 학교는>이 어느 정도 흥행 성공을 거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드라마가 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활과 내세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 약화를 입증한다.

 

부활한 몸을 기괴하고 혐오스럽게 묘사하고, 몸의 완전한 죽음을 

인생의 궁극적 완성으로 내세우는 좀비 콘텐츠의 메시지는

유물론과 실존철학 관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겠지만,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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