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할 무렵, 당시 늘 앞서가는 문화를 추구하던 선교단체 한 선배로부터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법칙>(하이럼스미스, 김영사)라는 책 한 권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저 선동열 방어율 학점을 자조적으로 논하며 낭만으로 점철된 캠퍼스 생활을 하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전에 없는 큰 충격을 안겼다.
책을 읽고 나서 당장 ‘프랭클린 플래너’를 구매해야 하나 강박관념까지 들 정도였다.
물론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에게 그 시절 10만 원에 가까운 비싼 다이어리를 사는 게 부담스러워,
저렴한 유사 다이어리를 구매해 나름 2년 정도는 깔끔하게 일정관리를 했었다.
그럼에도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은 헛헛한 무언가가 늘 나를 고민하게 했다.
바야흐로 자기계발 열풍이다.
시간 관리, 재테크, 습관 만들기, 다이어트, 자격증 공부, 사이드 프로젝트 등 자기 성장을 위한 플랫폼과 콘텐츠가 넘쳐난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다스리며, 발전시키는 삶의 태도는 참으로 중요하다.
게으름으로 타락하지 않고, 행복을 증진하며, 이웃에 덕을 세울 수 있는 성장이라면 마땅히 장려해야 함이 옳다.
그런 면에서 성경의 잠언과 전도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고자
마땅히 인생과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 기술된 영적 자기계발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자기계발의 방향성이다.
특히 기독교 문화 속에서 추구되는 자기계발은 경건함의 빛을 잃는 순간 부패한 냄새를 풍기기 마련이다.
여러 사역(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분명 교회에서 쓰는 익숙한 용어들이 인용되는데,
뒤돌아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묵상되지 않고, 그의 사랑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사역의 본질 혹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하고 있는 일들의 근원적 욕망을 점검해야 한다.
책의 제목처럼 습관이 영성인 이유가 그렇다.
영적인 언어와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외관을 포장해도
각 개인 혹은 공동체의 영성이 무시로 드러나는 바로미터는 습관일 수밖에 없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영적 습관의 형성을 이끌어내는 가치관의 재설정이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설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원대한 목표나 일상 루틴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에 세상의 성공과 번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강과 은총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영혼의 회복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가치관에 습관이 물들 때 우리 삶은 전에 없는 충만한 기대와 설렘 속에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되게 된다.
단지 개인의 성장이라는 벽을 넘어 타자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연합하고, 화목하게 된다.
책을 말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 첫 페이지부터 폐부를 찌른다. 저자의 묵직한 물음은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사명을 주신 이유가 내가 사랑하는 것과 일치될 때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기독교 세계관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성경의 렌즈로 다시 보는 것이다.
예배와 예전의 자리(환경)는 먼지나 이물질로 더러워진 렌즈를 잘 닦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말씀의 가치가 삶의 자리에서 거룩하게 빛나도록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영적 습관이다.
사실 책 표지만 보고 ‘흔한 습관 기르기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제시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출판사 이름을 보는 순간 고개를 젓게 되었다.
역시나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시중에 분별없이 출간되는 자기계발서의 앵무새처럼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식의 성공 라이프의 환상을 좇는 저급한 상술이 아니었다.
저자 제임스 K. A. 스미스의 관심은 성공이 아닌 영성의 형성에 있다.
때문에 ‘예전(禮典)’이라는 렌즈로 삶을 바라봤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믿음의 행함을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간 중심성에 기인한 심미적 만족이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강력한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예전의 본래 역할인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천으로서 ‘잘 되는 나’를 기대하고, 자기중심적 전망으로 꽤 괜찮은 습관 형성에 관한 동기 부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공산이 크다.
이 책은 예전을 통해 우리 삶의 중심의 추를 다시 하나님께 옮기도록 강력하게 권고하는 신앙 서적이다.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사랑하려다 사로잡히는 불안과 쉼 없음을 내려놓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제자리인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과 마음을 돌리게 한다.
심지어 우리의 예배조차 ‘드린다’는 표현이 아닌 하나님의 행위가 우선이라는 성경적 인식을 회복하게 한다.
이러한 가치가 우리의 일상과 예배에서 오염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기 위해 영적 습관이 필요한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것이 기독교 제자도의 처음과 마지막이요 가장 근본적 물음이다.
…제자도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거기에 주목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자도는 정보 습득(information)의 문제라기보다는 재형성(reformation)의 문제다." p.13-14, 39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목적을 발견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 대신 다른 존재를 사랑하려고 할 때 불안과 쉼 없음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p.27
"제자도는 우리를 불붙게 해야 하며, 우리 사랑의 “무게”를 바꾸어 놓아야 한다." p.32
"우리 문화는 우리에게 “좋은 삶”에 대한 결함투성이의 허황된 지도를 팔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p.43
"장 칼뱅은 인간의 마음을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라고 말한다.
우상은 오해나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 방향이 잘못된 욕구의 산물이다." p.45
"매일 성찰이란 삶에 주목하기 위한 실천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돌아보라.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날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사건을 두고 기도하라.
그런 다음 의도적으로 내일을 내다보라." p.92
"우리의 가장 깊은 실존적 굶주림, 즉 사랑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만족을 줄 수 없는 우상을 갈망하고 목말라하도록 은밀히 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98
"교회의 실천은, 근본적 욕망을 훈련시키는 반복 행위로 이끄는 영적 운동이기도 하다." p.107
"하나님이 일상에서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특별한 것에서 성령을 찾는다." p.110
"일주일 내내 세속 예전은 “자기 자신을 믿으라”라고 암묵적으로 가르친다. 이것은 은총을 거부하는 자기 확신의 거짓 복음일 뿐이다." p.154
"예전과 의례”의 핵심은 “하나님이 중심이신 강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p.115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우리를 예배의 행위자로 지목할 때(“나 주를 경배하리, 나 엎드려 절하며…”),
예배는 근본적으로 인간 의지의 표현, 펠라기우스주의적으로 자기를 주장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p.119-12
"예배에서 하나님의 행위가 우선이라는 성경적 인식을 회복하는 만큼 우리는 예배 형식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p.125
"저녁 식탁 자리의 형성적 힘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말라." p.209
"예배는 감정을 자극하는 30분 음악에 이은 30분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
오늘날 청소년(청년) 사역은 그리스도인을 형성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이들을 복음주의 클럽 카드 회원으로 묶어 두려는 최후의 노력인 경우가 많다." p.229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비극을 마주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에 저항하면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불의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는 이웃들을 애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소망을 지닌 사람으로서 슬퍼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p.211
"‘프로그램’ 전체가 두려움에 의해 - 두려움 때문에가 아니라 두려움에 의해 - 설계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자신들의 자녀, 흔한 표현으로 다음 세대가 교회와 신앙을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부모와 성인들의 창작품이다." p.227
"추운 겨울 아침, 경제학 수업 시간에 거시 경제 정책과 빈곤을 논하기 전에
한파를 견디고 있는 노숙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자칫하면 추상적 토론에 그칠 수도 있는 수업이
전혀 다른 맥락에 자리 잡게 할 수 있으며, 다시 한 번 우리의 가르침과 배움이
‘샬롬’에 대한 성경적 갈망을 지향하게 만들 수 있다." p.266
-브런치- - 매거진 크리스천 독서모임- 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