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란 표현을 경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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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란 표현을 경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기독교인들에게 바리새파와 적대적이었던 사마리아인은 "선한 사마리아인" 이미지로, 바리새인은 위선자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바티칸의 "유대인과의 종교 관계 위원회"에서 발행한 1974Nostra Aetate 지침은

'바리새인''바리새주의'라는 단어의 경멸적인 사용에 대해 경고했다.

교황청이 유대교인들을 고려해서 바리새란 표현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바리새인이란 경멸의 대상인 위선자를 뜻하지만, 현재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기원은 바리새파다.

그러므로 종교적 유대교인들에게 바리새인은 그들의 경건한 조상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위선자를 바리새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유대인에겐 매우 불쾌한 일이다.

우리 나라야 유대인들에 대해 환호하고 반유대 정서가 거의 없지만,

유대공동체가 오래전부터 존재한 서구나 동구권에서 이는 큰 문제다.

 

유대교인들에서 1세기 바리새인은 늘 마음속에 율법을 새기고 산 경건하고 대중에게 칭송받던 평신도 개혁가들이요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진화 원리를 주장하였는데, 인간은 토라를 해석하고 그것을 현대 문제에 적용할 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두개파가 시대가 바뀌어도 기록된 토라, , 모세오경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바리새파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문법 이외에 구전전통을 주셨다고 주장했다.

이 구전전통은 늘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적용된 해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리새인을 연구하다 보면 실제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슷한 것들이 상당히 많다.

흥미로운 점은 바리새인이 주장하는 율법(토라)의 기능과 바울이 주장하는 예수의 기능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토라(예수)는 선재 했고, 세상을 창조했다. 토라(예수)는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 새겨져 역사한다.

그들은 토라(예수) 중심의 식탁공동체를 중시했다.

바리새인들에게 성문법보다 시대와 문화에 맞추어 새롭게 해석되는 구전전통이 중요하듯,

신약 백성에겐 구약의 성문법보다 그리스도의 법이 상위에 있다.

 

마태에서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원수로 등장하지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그들은 적대자 이외에도 예수를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호의적인 주인,

혹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도움을 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