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을 통과한, 그 눈부신 빛

후우카 김 저,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을 읽고 

 by김영웅Feb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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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카 김 저,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을 읽고

 

누군가의 기억의 방으로 초대받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한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것을 내것인 것처럼 여기고 받아들이는 일. 누군가를 공감하는 일. 공감 없는 이해는

피상적이고 때론 잔인할 수도 있기에 이러한 과정은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겪어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거룩하다 말한다. 타자를 안다는 것은 이런 거룩한 과정을 통과한 아름다운 열매이자 사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라고 믿는다.

 

후우카를 안 지 5년이 넘었다. 현재 남편인 정현욱 목사 덕분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나에게 있어 몇 안 되는 소중한 만남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단지 그것 때문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글이었다. 후우카의 글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글 이면에 감춰진 그 무엇이 어느 날 내 안으로 훅 들어왔다.

단지 여성의 글이기 때문도, 단지 글을 잘 쓰기 때문도 아닌 그 무언가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읽기를 고대하던 글이 마침내 책 한 권으로 탄생했다. 나만큼 이 책을 오래도록 기다린 독자가 또 있을까.

그녀의 글들이 소복이 담긴 첫 책,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을 읽고 나는 후우카라는 한 사람을 더 알게 된다. “알게 되어 고맙습니다.”

 

제목이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럼에도’라는 단어와 ‘눈부신’이란 단어의 무게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는 결코 하기 쉬운 말이 아니다. 그런데 ‘눈부신’은 더 그렇다.

‘그럼에도’의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눈부신’의 깊은 단계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눈부신’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럼에도’의 고된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독자로선 두려울 수도 있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저자의 진정성 깃든 글쓰기는 당신의 눈과 마음을 집중시키고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시간마저 멈추게 할 것이다.

이 책은 단지 ‘읽는’ 책이 아닌 한 사람을 ‘아는’ 책이다. 겸손하고 낮은 마음이 준비되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들라.

 

이 책은 에세이집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삶의 어두운 심연을 통과했고 또 통과하고 있는 한 사람의 글이다.

세상엔 많은 에세이들이 넘쳐난다. 어려운 삶을 살아내고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의 많은 글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저자의 유려한 글쓰기는 포장에 집중되곤 한다. 자신의 상처를 파는 글들 역시 교묘하게 허세를 부리는 데 사용되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치부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에 속한다.

이 책의 저자 후우카는 그 일을 덤덤하게 해냈다. 많은 에피소드들은 눈물을 자아낸다.

읽는 이에게까지 삶의 비참함과 비루함을 느끼게 한다.

바닥 끝까지 내려간 삶을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그 헛헛함은 자세를 고쳐 앉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다행이다. 저자도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그런 어두움을 드러내는 목적이 아닌 그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언제나 빛나는 빛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참 고맙다. 고되지만 올바른 길 위에서 견뎌내어 줘서 고맙다. 

 

삶의 어두운 심연 한가운데에도 가느다란 구원의 눈부신 빛줄기를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 빛에 의지하여 어두운 숲을 통과해내는 일.

이 두 과정은 외부의 척박함은 물론 낯설지만 익숙한 내면에 존재하고 있던 또 다른 자아와의 숙명적인 만남과 화해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혼자만도 힘든데 저자는 홀로 키워내야 하는 어린 세 자녀들이 있었고, 재혼 후 두 자녀가 늘어나 총 다섯 자녀를 돌보는 엄마이기도 하다.

가난은 그녀의 삶의 방식이었다.

일본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써 일곱 살 때 처음 아버지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오며 박대를 당해야만 했다.

책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첫 번째 남편과의 이별에도 말 못 할 사연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먹먹해진 가슴이 조여 온다.

갈 데까지 간 것 같은데 아직 끝이 아니었다는 생각까지 들면 당장 여기서 그만두고 싶어 진다.

인생이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저자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이었고 깊은 어둠과 여러 얼룩으로 칠해진 고된 삶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녀가 나지막이 고백하는 ‘눈부신’이라는 단어가 한없이 빛나는 까닭은.

그녀가 말하는 ‘눈부신’은 흔히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 동공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런 눈부심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그 눈부심은 별 볼 품 없는 빛줄기로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빛으로 보였다.

딸깍 스위치를 올리면 단번에 켜지는 스타디움의 화려한 불빛이 아닌 어두운 골목에서 새어 나오는 한 줄기 가느다란 백열구가 내는 빛에 가깝다고 보았다.

그것이 진창 속에 비친 한 줄기 가느다란 구원의 빛인 것이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그 영원한 빛.

하나님의 임재. 침묵 가운데에서도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 이 책에 쓰인 바로 그 ‘눈부신’의 의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 좋겠다.

화려하기만 한 빛이 아닌 어두움을 통과한 가느다란 빛. 그 눈부신 빛의 임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얻고 희망을 발견하길 소망한다.

 

#'김영웅의책과일상'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