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집] 3일 차 '세상을 사는 새로운 방식'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태복음 6:27)

 

사순절은 우리에게 회개의 의미를 묻는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우리는 사순절을 죄와 고통, 자기 부인과 같이 개인적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구태의연한 기간으로 보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한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주변 사람들과의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았는지 가응함을 보이셨습니다."

 

'불안'은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사는 방식입니다. 불안은 강요와 괴롭힘 그리고 염려에서 생깁니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 자신을 방어하고 가진 것을 지켜려 합니다.

또한 불안은 무언가를눈덩이터럼 쌓고 지키는 일에 몰두하도록 만듭니다. 

그 결과 우리는 그것에 사로잡혀 서 마침내는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대답이 필요 없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반론들과 설명들을 무력화시키는 질문이었습니다.

"너희가 잘 알고 있듯이, 누가 염려한다고 너희 삶에 한 자를 덧붙일 수 있겠느냐?

예수님의 질문은 우리의 마음을 쓰라리고 당혹케 합니다. 자기방어와 두려움과 탐욕의 태도는 결코 어떤 소득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나은 길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이미 습관이 된 불안의 방식을 놓지 못하고 탐욕에 몰두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염려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위치, 당신의 교회, 당신의 계급, 당신의 가치들, 당신의 권리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속한 인류 공동체의 안녕에 대해 염려하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는 설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사명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사명은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 존엄성의 위기, 개인의 상처, 사회 제도의 실효성 그리고 인간관계의 회복에 관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염려에서 벗어나 인류 공동체의 온전함을 위해 다가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 자신을 위한 집착에서 자유하게 하소서. 이웃을 염려하는 넉넉한 마음을 주소서.

우리가 속한 자리, 우리기 속한 교회, 우리가 속한 계급,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

우리가 가진 기득권에 대한 염려하가보다 인류 공동체의 안녕에 관심을 가지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오는 기쁨과 자유를 알게 하소서. 아멘. 

 

윌터 브루그만과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집- 가보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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