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목적

욥기 1장 9-12절

9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경건함 지혜는 고난에 고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욥의 이야기가 그 방식을 보여 준다. 

도덕주의자나 냉소주의 같은 뻔한 답은 여기에 없다. 도덕주의자는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당신의 삶에 고백하지 않는 죄가 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바르게 살면 잘 풀리게 되어 있다."

냉소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원래 만족 없이 살다가 죽는 게 인생이다. 신이 있다면 점심 먹으러 나갔다 보다.  당신은 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 가지 답 모두 미련하고 멍청하다. 도덕주의자는 고난의 목적을 단순히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으로 본다.

그럴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냉소주의자에게도 고난의 목적은 단순하다. 아무 목적도 없으니 말이다! 

경건한 지혜는 , 하나님께 목적이 있으나 그 목적이 깊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 우리는 도덕주의자나 교먼아너 냉소주의자의 무정함에 빠지지 않는다.

또 그 두 입장이 고난당하는 자에게 안겨 줄 수 있는 절망에도 빠지지 않는다. 

 

당신의 삶은 더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는 지점에 이르렀는가? 고통과 낙심 중에도 그분을 신뢰하는가?

 

오늘의 마중물 기도.

주님, 제가 젊어서는 도덕주의자에 가가웠다가 나이가 들면서는 냉소주의에 점점 빠집니다. 

제 주변 사람들도 다들 비슷하게 변하는 게 보입니다. 저를 그 길에서 구해 주옵소서. 아멘.

 

-팀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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