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4:7-9
7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어려움을 겪을 때 사람들은 기억 속으로 돌아가서 확신이나 안정을 줄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그때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상상의 셔틀을 타고 여러 번 그때와 지금을 오가게 됩니다.
그 과정속에서 현재의 어려움은 옛 기억과 서로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우리 기억은 모든 것을 휩쓸고 가 버리는 홍수나 갈 곳을 잃어버린 추방당한 망명자와 같아서 확실성이 약해지면
이전에 믿을 만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마저도 불확실해지며,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집니다.' 그것은 나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두려움의 상확 속에서 인간은 파괴성향을 보입니다.
평상시보다 더욱 불쾌해지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자신의 방식에 욕심을 내고, 절망하고, 그 결과 야만적으로 변해 갑니다.
파괴적인 성향은 우리 주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일상의 날들을 우리는 여러 가지 힘에 굴복하며 살아갑니다.
필요에 따라 나와 내 주변만을 챙기며 이기적으로, 현실적으로 굴복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대안으로 우리는 건강한 기억을 현재로 가지고 와 새롭게 상상해 보거나 시로 읊조리는 행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한 상상의 행위는 단순히 현실적인 규범에 순응하고, 개인의 이익에 사용하거나 우리의 관습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현실에만 머물기를 바란다면 우리에게 시나 예술이나 상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당면한 현실에 저항하여 시를 통해 자신의 사유의 세계를 펼칩니다.
이러한 상상의 행위는 우리의 현실을 전복시키고 우리를 좀 더 나은 삶으로 초대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파괴적이고 병리적인 구조를 따를 수밖에 없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혼돈에서 어느 날의 기억에 뿌려내렸던 그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하면, 증오가 아니라 연민으로, 유기가 아니라 연대로,
고립이 아니라 언약으로, 소외가 아니라 안녕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형성할 소망의 텍스트가 재구성될 것입니다.
어려움으로 가득찬 시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화평의 하나님.
신실한 기억들을 가지고 다시 사랑을 상실하게 하소서. 아멘.
윌터브루그민과 함께 히는 사순절 묵상집(가 보지 않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