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34)
하나님께서 잊으신 것을 우리가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을 표류하던 죄책감은 불현듯 출몰하여 우리를 천천히 좌절의 늪에 빠지게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고백한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좌절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유합니다.
대출 기한이 지난 책들을 연체 없이 반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불법 총기를 처벌 없이 자잔 신고 할 수 있는 제도를 두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한 연체와 불법총기 소지에 대해 사면을 받을 때까지 우리는 그 사실을 숨겨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을 속이는 도덕적 실패이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디에도 숨길 수 없으며,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대사면을 베푸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죄책감, 두려움과 원한은 증발해 버렸고 우리는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게서 벗겨주신 짐을 더 이상 우리가 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서로를 향한 우리의 행위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악의로 그럴 때도 있고 부주의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그 말이나 행동은 오해, 불신, 적의, 소외를 낳고 우리는 그것과 함께- 영원히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미 취했던 행동들의 결과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습니다. 상황은 점점 불쾌해져가고 소외는 깊어만 가고 측정할 수없는 정도에 이릅니다.
수년 전에 내뱉는 심한 말로 인해 관계가 계속 악화된 가정이 있습니다. 서로의 상처로 인해 마음이 얼어붙어 더이상 회복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많은 일들을 행합니다. 국가와 인종 간의 야만성은 계속되며 독소를 내뿜습니다.
우리는 어긋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그 과정은공허하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다는 믿음 없이는 이겨 낼 수 없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무죄'의 선언을 앞두고 잠시 멈추어 보도록 만듭니다. 상황이 계속될 필요는 없습니다. 악순환은 깨질 수 있습니다.
여기를 주목하십시오. 새로운 기회가 주셨습니다. 새로운 기회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제는 깨어지고 상한 마음을 그대로 관망하며 방치하는 것을 끝내고,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스스로 괜찮다고 위장하는 것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을 위한 행동이나 언어가 아니라 회복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 스스로 할 수없는 회복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확신입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진실로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며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의 깨어진 마음을 깨어 내어놓습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우리 안에 사랑할 수 있는 새 마음을 창조하시는 그 능력을 확신합니다. 아멘.
윌터 브루그만과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집 (가 보지 않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