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5장 23절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문을 일으키느니라.
오늘 본문의 참소하는 혀는 교활한 혀로도 옮겨질 수 있다. 이는 험담과 중상이 교묘해서 얼른 눈에 뜨지 않음을 일깨워 준다.
험담은 변장술이 뛰어나다. '곡 알아 둘 일'을 예고하는 식일 수도 있고, '딱한 아무개'를 향한 거짓 연민의 표현으로 꾸밀 수도 있다.
심지어 기도 제목이라는 이름으로 나눠질 수도 있다. 험담은 늘 말로만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야고보서 5장 9절에 "서로 원망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원망하다'라는 단어는 본래 탄식하며 남에게 눈알을 굴린다는 뜻이다. 경멸하는 태도를 전달하는 데는 몸짓 언어도 말 못지않게 중요하다.
분한 얼굴로 노기를 띠고 고개를 내두르고 눈알을 굴리고 한숨을 내쉬며 묘한 웃음을 흘린다면, 말이 없어도 피해를 입히기에 충분하다.
남에 대한 내 말이 험담인지 아닌지 어떻게 분간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혹시 상대에게 직접 말해야 할 문제는 아닌가?
이 정보를 공개해도 상대가 괜찮아 하겠는가? 나라면 누가 나에 대해 이런 내용을 말하기를 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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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누가 당신에게 남을 험담한 적이 있는가? 말한은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했어야 했는가?
오늘이 마중물 기도. 주님, 제 혀로만 아니라 몸짓 언어로도 누군가의 평판을 해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은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사람을
비웃으신 적이 없습니다. 저도 주님을 본받아 그러지 않게 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