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e Home 이 사람을 보라! 친첸도르프[Zinzendorf]가 은혜받은 도메니코 페티의 성화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 1589-1623) Ecce Homo
Bayerische Staatsmuseum in Munich, 뒤셀도르프 Dusseldorf
Ego pro te haec passus sum (에고 프로 테 해크 파수스 숨)
Tu vero quid fecisti pro me (투 베로 퀴드 풰키스티 프로 메
"I have suffered these things But what have you done for me"
"This have I suffered for you; now what will you do for me?"
"나는 너를 위해 목숨을 버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위 그림은 18세기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영적 지도자인 친첸도르프(Nikolaus Ludwig, Graf von Zinzendorf 1700~1760)가
1719년, 19세 때에 그의 영적 여정 중에 독일 미술관에서 보고 큰 은혜를 받았다는 유명한 성화입니다.
친첸도르프는 오스트리아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루터파 가문이었는데 훗날 당시의 신학적 이론적 정통주의보다는
영적 심정(心情)적 경건 실천 신앙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의 생애의 은혜 체험으로 널리 알려진 이 그림은 이탈리아의 화가인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 1589-1623)가 그린
Ecce Homo('에케 호모'; 현대 발음은 에체호모입니다.)
이 제목으로 많은 성화들이 그려졌는데 도메니코 페티도 같은 제목으로 여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독일 뮌헨München 뒤셀도르프의 바이에뤼스케 Bayerische Staatsmuseum in Munich-바이에른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윗 그림이 친첸도르프가 은혜받은 그림이라고 보입니다.
그림 밑에 새겨진 아래와 같은 글귀 때문입니다.
Ego pro te haec passus sum (에고 프로 테 해크 파수스 숨)
Tu vero quid fecisti pro me (투 베로 퀴드 풰키스티 프로 메)
"This have I suffered for you; now what will you do for me?"
"나는 너를 위해 목숨을 버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왔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겠느냐?"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 1589-1623)의 다른 그림 Ecce Homo
Ecce Homo! 에케호모 에체호모!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도대체 나에게 있어서 누구입니까?
이 사람, 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도대체 나에게 있어서 누구이십니까?
그는 무엇을 한 분입니까?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하고 말하였다."(공동번역 요19:5 )
ut cognoscatis quia in eo nullam causam invenio et purpureum vestimentum et dicit eis ecce homo!(John19:5)
친첸도르프(진젠도르프)는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을 위해 행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당신이 이끄시는 어떤 것이라도 행하겠습니다."
1700년 드레스덴(현 독일)에서 스트리아 가문 출신인 한 작센 선 제후국 장관의 아들로 태어난 진젠도르프는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경건주의자 슈패너와 친밀하였으며, 프랑케와 함께 대중교육과 성경배포
그리고 선교를 장려하였던 외할머니 헨리테 카타리나폰 게르스도르프(Henriette Katharina von Gersdorf)밑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진젠도르프는 10세가 되던 해에 할레대학에 입학하여 17세까지 그곳에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프랑케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그의 경건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상인 순결한 교회와 순결한 영적 생활에 대한 뿌리가 내면에 자리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할레 대학 출신의 선교사 지겐발크와 플뤼차우가 보낸 동 인도 선교에 관한 보고들을 접하게 되었고
1713년에는 플뤼차우가 할레를 방문했을 때 그를 직접 만나기도 하였다.
이처럼 진젠도르프는 할레 재단의 선교적 지원을 보면서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젠도르프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겨자씨 모임(the Order of the Grain of Mustard Seed)'을 결성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거하고 신앙문제로 고민하는 형제들을 도우며 아직까지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해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들 모임의 목적으로 삼고 활동하였다.
그 후 1719년 진젠도르프는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연구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도중에 뒤셀도르프에서 화가인 도메니코페티(Domenico Feti)가 그린
"내가 너를 위하여 이것을 당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라는 각명(刻銘)이 달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를 사로잡게 되었고 진젠도르프는 이 그림으로부터 그의 필생의 사역에 있어서 상당히 주요한 자극을 받게 되었다.
진젠도르프가 이룩한 괄목할만한 업적은 바로 모라비안 교회를 설립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보헤미아 국가 교회의 박해를 피해 헤른후트(Herrnhut)로 피난온 형제단(The Unity of the Brethren)이라고 부르던
모라비아의 후스파(Hussites) 개신교도들이 진젠도르프의 지도하에 기독교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이 공동체가 '모라비아파'라고 불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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