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집] 09 웃음의 거품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누가복음 6:21b, 25 b)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라고 선포하시면서 '지금 웃는 자'를 비판하셨습니다. '지금 웃는 자'들은 지금의 질서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항상 확신으로 가득하여 배불리 먹고 사람들과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웃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너희의 웃음 소리는 멈추게 될 것이다. 웃음의 거품이 사라지면 틀림없이 슬픔 속에 빠질 것이며, 너희는 상실을 겪을 것이다. "
"유대 종교당국의 폐쇄적인 통제는 지속되지 못할 것이고, 로마 제국은 모든 제국과 마찬가지로 곧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희는 지금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애통과 울음을 마지못해 하는 포기와 관련 있습니다. 우리는 늘 마지못해 포기합니다.
교회 안에서 동성연애자들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성에 대한 갈등이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익숙함을 고수하고 유지하려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익숙함에서 편암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변화룰 최대한 미루는 '지연전술'을 펼칩니다.
우리는 교회 내에서 동성애 문제가 명료해지면 무슬림과 이민자 문제와 같이 사회에서 쟁점이 되는
또 다른 문제들을 계속해서 찾아 자신들의 마지못한 포기를 유보하려 합니다.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공통적인 유혹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어느 누구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웃으십시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것은 탐욕, 폭력, 불안, 착취의 형태로 오는 모든 죽음의 권세가 패배할 때 주어지는 웃음입니다.
교회는 탐욕, 폭력, 불안, 착취등 죽음의 옛 세상을 넉넉한 마음으로 포기하는 제자들의 몸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질서와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가 도래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교회가 공허한 기쁨, 번영, 그리고 허황된 확신을 추구하는 '지금 웃는'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절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교회가 세상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의 상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애통을 인식하는 장소가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게 애통을 다룰 때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오, 하나님,
우리를 굳건하게 하셔서 옛 세상을 포기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애통의 반대쪽에서 희망과 기쁨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윌터브루그만과 함께 하는 사순절 묵상집(가보지 읺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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