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필사하여 필사의 삶을 살라!
<필사적(必死的)으로 필사(筆寫)하여 필사(必仕)의 삶을 살라!>
[1] 19세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종교학 과목 시간에 이런 시험 문제가 출제 되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에 대해 논하시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정신없이 답안을 쓰기 시작했다. 신학적으로, 물리학적으로, 문학적으로 한자라도 더 써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 학생만 멍하게 창밖을 보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다.
[2] 그러자 시험 감독관이 주의를 줬다. “자네, 뭐든지 써야 점수가 나오지, 이렇게 백지로 내면 과락이야.”
그러자 그동안 멍하게 앉아 있던 학생이 백지에 딱 한 줄을 써 놓고 유유히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학생이 쓴 단 한 줄의 답은 케임브리지대학 신학과 창립 이후 불멸의 전설로 기록되는 만점 답안지가 되었다. 그 내용이 뭔지 아는가? 이것이다.
[3] “물이 주인을 만나니 그 얼굴이 붉어지더라.”(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예수님의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을 이보다 더 간결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전설적인 답안지를 쓴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는 훗날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으로 유명한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이란 사람이다.
하지만 이 문구가 바이런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란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다.
[4] 그 원 저자는 다른 사람이다. 바이런이 태어나기 200여 년 전에 출간된 영국 시인의 ‘Epigrammatum Sacrorum Liber’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 중 리처드 크래쇼(Richard Crashaw)가 쓴 내용 중 이런 문장이 있다. ‘The conscious water saw its God and blushed.’ 비교해보면 바이런이 17세기 리처드 크래쇼의 시를 약간 바꿔서 인용했음이 분명해진다. 크래쇼에게 돌아갈 찬사를 바이런이 찬탈해간 셈이 되고 말았다.
[5] 그러나 바이런이 크래쇼의 문장을 있는 그대로 베껴 표절한 것은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절'이라기보다는 '모방'이라 해야 옳다. 유명 작가들이나 화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은 유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모방은 창작의 지름길이다. 모방을 통해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세계를 펼친 이들이 많다. 천재 화가 피카소를 비롯해서 악성 모차르트와 낭만파 작가 바이런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6]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유일한 창조주는 하나님뿐이다.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창작할 수 없다. 다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서 개선 보완할 뿐이다.
때문에 화가들은 유명한 선배들의 작품을 모방하다가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되고, 작가들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을 필사하면서 배우고 익혀서 자기 특유의 진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7] 성경을 필사하다가 병 고침을 받는 등 기적을 경험하는 이들의 간증을 심심찮게 듣는다.
새해가 되었다. 새로 맞이한 2022년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들을 많이 읽는 일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보다 소중한 일은 없다. 성경을 손으로 필사한다면 더 큰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리라 본다.
하나님이 주신 세월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고 영혼의 양식으로 풍성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