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을 불어 자유의 기쁨을 선포하라
입력 : 2016-10-18 20:39
찬송 :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95장(통 8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5장 11∼32절
말씀 : 본문은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돌아온 아들 이야기도 있지만 그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도 담겨 있으므로 ‘기다리는 아버지’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비유의 초점이 오히려 큰아들에게 있으므로 ‘기뻐하지 않는 형제의 비유’로 부르자고 했습니다. 큰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오해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탕자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큰아들은 집에 돌아온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 않고 ‘이 아들’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 지낸 시간을 가족으로서의 기쁨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29절에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이라는 표현은 자기의 의를 강조하는 것이며 아버지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입니다. ‘염소 새끼’ 하나 받은 적 없다는 표현 역시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 지낸 세월이 보상 없는 헛노동의 세월이었다는 항변이지요.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기보다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연상케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비유가 있습니다. 잃은 양 비유와 잃은 드라크마 비유,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탕자의 비유입니다. 비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구를 향해 말씀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비유가 시작되는 첫 부분을 보면 예수님 곁에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나아옵니다. 그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모습을 보고 수군거립니다. 예수님께서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한 것입니다.
비유의 청중 대상이 바리새인이라면 ‘큰아들’은 분명 그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세리와 죄인을 상징합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죄인시하며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모든 접촉을 피하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을 피하지 않고 함께 교제를 나눕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비유를 듣고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러 오신 분입니다. 이 땅의 버림받고 소외되고,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 받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는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며 주님께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삶의 태도를 바꿔야할 사람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불만을 가진 큰아들과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앙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신 뒤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본디 잔치란 모두가 참석할 때 가치 있는 것이며 기쁨 또한 커지는 법입니다. 주님은 지금 바리새인에게조차도 잔치에 함께 참여하자고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기도 : 주님,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주의 사랑과 용서를 전하는 일에 실패하였나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남상준 목사(대전 소망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