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을 불어 자유의 기쁨을 선포하라
입력 : 2016-10-31 20:55
찬송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412장(통 4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사무엘상 16장 1∼5절
말씀 :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들 중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울 임금이 있는데 이리하는 것은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는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그곳 원로들은 그를 반기기보다는 불안한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영문을 몰랐지만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그곳에 온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오자 그들은 떨며 물었습니다. “평강(샬롬)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이에 사무엘은 “평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샬롬(평강)이란 말에는 이중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평화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온전함)입니다. 한마디로 평화는 모두에게 좋아야 진정한 평화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나라) 전체를 위하여 베들레헴에 온 것입니다.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가는 곳에 평화를 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화를 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인물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이쪽에 가깝기도 하고 저쪽에 가깝기도 합니다. 우리(나)는 대체로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평화란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평화의 임금으로 오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2:51) 여기서 분쟁은 거짓평화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목적과 말씀에 부합되지 않는 평화, 바르고 참된 진리에 서지 않은 평화, 어느 편이 다른 쪽에게 완전히 눌려서 생겨난 조용함, 겉으로만 고요하게 보이고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것은 결코 평화가 아닙니다. 갈등이 노출되지 않았거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평화롭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어폐가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공의에서 출발합니다. 사무엘은 평화를 위하여 베들레헴에 왔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5절).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곧 평화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예배)에서 출발하여 사람을 만나는 것, 하나님 말씀과의 만남(예배)에서 출발하여 세상일을 하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평화를 세우는 사람일까요? 오늘도 우리는 주어진 역할(일)을 할 것입니다. 그 일이 평화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오늘도 매사에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하나님의 평화로 채우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 하나님, 오늘 저희가 오가는 길과 머무는 자리에서 평화의 일꾼이 되게 도와주소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현진 목사(서울 수도교회)
◇약력=△한신대 신학과 및 대학원 졸업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신학박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